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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오사카부

오사카 01. 탈 많은 오사카 역사


오사카의 일본사에 첫걸음


   현재의 기초가 되는 오사카는 다이카 개신(635년 한국은 이 당시 당나라와 고구려의 안시성 전투가 한창 이였다.)이라는 큰 사건으로 인해 생겨나게 된다.

   다이카 개신이란? 대화개신이라고도 하며 기존의 야마토 조정을 몰아내고 오카미 조정이 정권을 잡게 된 사건이다. (한국으로 치면 고려의 왕씨왕조에서 조선의 이씨왕조로 바뀐 것처럼 생각하면 된다.)



오사카 나니와라는 이름으로 탄생하다


   다이카 개신 이후로 일본은 최초의 천황 호칭을 사용하게 되고 오카미 조정의 핵심 수도가 오사카였다. 이 당시 오사카의 이름은 주변에 나니와라는 큰 습지가 있어, 나니와로 불렸다. 이후 오사카는 서일본의 교통의 요점,거대한 항구, 수운의 요충지로 계속 성장 해오고, 남쪽의 시텐노지 (일본 불교 첫 관사, 현재의 시텐노지 절)나 스미요시 타이샤 신사, 또 구마노(불교 순례길)로 이어지는 육상 교통의 요충지로 성장 하고있었다.



15세기 나니와에서 오사카가 되다


   일본 전국 전쟁 이후 오사카는 1583년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오사카에 성을 쌓아 올려, 성벽아래에 부하의 영주의 저택이나 오사카 히라노 상인 (오사카 시)이나 교토 후시미 아킨도 (교토 시), 계 상인 (사카이 시) 등의 주변의 마을들의 백성을 모으고, 오사카에 마을을 짓는데 이 도요토미 정권기를 "오사카 시대" 라고 하며, 이때 나니와에서 오사카로 개명이 되었다,



에도시대 경제적인 중심지가 되다.


   번성하던 오사카는 도요토미의 가문이 멸문한 여름전쟁 (도요토미vs도쿠가와) 으로 오사카는 일시적으로 황폐했지만, 에도 막부는 오사카를 직할지 (천령)로 해 오사카 성을 재건하는 한편, 하천의 개수나 굴의 산과들을 깎음을 실시하며 오사카는 일본 전국의 물류가 집중하는 경제·상업의 중심지가 되어, '천하의 부엌'이라 불리며 번영했다. 이러한 경제적인 발전에 오사카는 겐로쿠 문화(17~18세기의 일본 서민문화)가 꽃 피었다.


 


메이지 유신, 지금의 오사카로 탈바꿈하다.


   1889년에는 메이지 정부에 의해 오사카부 관내의 오사카 시가 된다. 오사카 시는 그 후 주변의 도시와 시골을 합병하고, 1925년에는 거의 현재의 영역에 퍼졌다. 한층 더 부는 주변의 현을 통합한 후, 1887년에 나라현을 분리해 현재의 오사카부의 영역이 되었다. 이 결과, 원래는 도시명인 오사카의 지명은 현재와 같이 광역을 가리키게 된다.